나의 감상
아주 오래된 책을 당근 마켓에다 고물로 팔아버릴까 하다 우연히 읽게 되었다. 1967년 인쇄했으니까 자그마치 55년 이상 된 책이다. 종이는 노랗게 바랬고 세월의 무상을 반영하듯 손가락의 작은 넘김에도 가장자리가 살짝 떨어져 나간다. 헌책방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오래된 종이 냄새도 난다.
중국 4대 기서이자 음서(淫書)로 평가받는 금병매. 주인공 서문경의 8명 첩인 오월랑, 이교아, 맹옥루, 손설아, 반금련, 이병아, 송혜련, 봉소추와 양염방, 요금, 이계저와 같은 외부 여인들, 그리고 반금련의 몸종 춘매 등이 등장 인물로 나온다. 책 제목인 금병매는 반금련, 이병아, 춘매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이 고대 소설은 평범한 사람들의 욕정과 일상적인 사생활을 다룬 소설이다. 영웅호걸의 서사를 다루는 대부분의 고대 소설을 탈피하고 일반인의 음란하고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로 구성된 보기 드문 작품이다. 저자는 17세기 명나라 사람이지만 500년 전인 12세기 송나라 서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재력가이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호색한인 서문경 집안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망 사건의 실마리를 건달이자 풍운아인 응백작이 파헤치는 추적 과정은 흥미롭다. 사망한 여인들의 모든 배후에는 교묘한 반금련의 계략이 숨어 있지만 응백작은 특유의 추리력을 발휘하여 사망 원인을 밝혀내고 만다. 반금련은 다른 첩에게 밀리지 않고 주인 서문경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치밀한 살인 계획과 알리바이를 만든다. 머리 회전이 뛰어나고 총명한 두뇌의 소유자가 욕정을 독차지하기 위해 뛰어난 재능을 경쟁자 제거에 쓴 셈이다. 요즘으로 치면 에로틱 추리소설이 아닌가 싶다.
책의 구성은 좀 생뚱맞다. 절반 앞 부분은 금병매(230쪽), 나머지 절반 뒷 부분은 서유기(208쪽)인데 책 제목은 금병매이다. 서유기는 TV에서 아동 만화로만 보았는데 50여년 전 출판한 성인용 소설로 읽는 것이 묘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이 출판된 시절은 우리나라에 TV가 막 보급되고 있던 때였다. 230쪽 단행본인 금병매는 1960년대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자극적인 내용은 빼고 스토리 전개 위주로 내용을 구성한 듯 하다. 아니면 그 당시 국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서 일본 서적을 번역했을 가능성도 있겠다.
한자가 많기도 하고 본문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세로 방향으로 눈알을 굴려가며 읽는 맛이 반갑다. 내 기억으로 국민학교 4학년 1982년 집 안 거실 책장에 있던 5권짜리 삼국지를 읽었을 때도 이런 방식이었다. 문장 속의 동사, 형용사, 맞춤법이 현재와 다른 것도 많이 보인다. 1960년대 우리나라 여건상 국어 교육이 표준화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낙후한 인쇄 교정 기술상의 이유인지 모르겠다.
내용 중에 다양한 음식의 요리법과 여성 의상에 대한 묘사가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당시의 풍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예스24에서 찾아 보니 2022년에 문예춘추사가 출간한 총 10권짜리 완역본이 보인다. 기회가 되면 원본에 충실한 완역본을 읽어봐야겠다.
지금 80대 후반인 아버지, 엄마 세대가 30대였을 때 읽던 책, 50여 년이 지난 후에 집구석에서 우연히 찾아내어 손가락의 작은 힘에도 쉽게 떨어지려 하는 허약해진 책을 자식이 읽게 된 것은 소소한 역사의 반복 아니겠는가 싶다. 읽는 동안 낡은 표지가 찢어지려 한다.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제목 – 금병매(金甁梅)
저자 – 소소생(笑笑生)
출판 – 문교출판사, 1967.1.20 인쇄
쪽수 – 금병매(230쪽), 서유기(208쪽)
독서 – 2025.01.23~2025.02.27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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