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rug Hunters
나의 감상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고등학생 딸이 대학 입시 수행 평가 준비를 하면서 사두었다가 보지는 않고 책장에 쑤셔 박아 놓은 것을 우연히 발견한 나의 예리한 레이저 시선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나는 물리를 좋아했지만 화학에는 흥미가 없어 거리감을 두었다. 지루한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기 시작했지만 괜한 우려였다.
저자는 대형 제약 회사에 근무했던 전문가로 인간이 겪어온 질병 역사와 신약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인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흥미 있게 써 내려갔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깊이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지막 장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약의 발견은 야생 식물의 열매, 뿌리를 채집하던 원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발견한 약초의 효능을 발견하면서 약의 역사가 시작됐다. 식물에 의존하던 시대에 인류는 양귀비에서 아편을 발견하면서 마취 효과를 보이는 성분을 찾아냈다. 아편의 활성 성분을 추출하여 독일에서 1826년 모르핀, 1897년 헤로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부작용을 모른 채 대중에게 사용했다. 모르핀은 마치 꿈을 꾸듯 정신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헤로인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영웅이라고 여겨 ‘히어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늘날 두 약품은 모두 마약이다.
마취제가 없던 중세 시대에는 다리 절단과 같은 외과 수술이 마치 호러쇼와 같다고 표현한 저자의 설명은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 맨 정신의 환자를 붙들고 있던 보조 요원이 의사의 빗나간 수술용 칼을 맞아 사망하고, 옆에서 보고 있던 환자 가족이 실신해 죽어 나갔다고 하니 극한의 공포였을 것이다. 인류에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마취약이 절실히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 화학자들이 버드나무 껍질에 함유된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을 합성하여 아스피린과 같은 진통제가 나왔고, 매독 등을 치료하는 항생제가 대중화되었다. 아스피린은 1897년 독일 바이엘에서 만든 최초의 합성 의약품이며 지금도 널리 복용하고 있다. 매독은 무서운 질병이었고 항생제의 등장으로 많은 생명을 살렸다. 하지만 항생제가 나오자마자 병균은 내성을 갖게 되어 약효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나는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몇 십 년 전부터 발생한 것인 줄 알고 있었다. 내성 문제는 19세기 말 항생제를 처음 만들 당시부터 이미 골치 아프게 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학자들은 흙에서 살고 있는 미생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곰팡이와 미생물에서 유익한 활성 분자를 찾아내어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를 개발했고 당시 유행했던 결핵을 치료했다.
21세기는 유전자 합성의 시대이다. 식물에서 비롯한 약품 개발에서 벗어나 동물의 유전자 조작을 거친 약의 개발이 시작됐다.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여 대량 생산 공법을 개발하고, 이를 당뇨병 치료에 이용했다. 잦은 출산으로 어머니를 일찍 떠나 보낸 딸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여성 건강을 위한 미국의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여성 백만장자 후원자, 집요한 성격의 과학자와 뜻을 같이 해 인류 최초로 경구 피임약이 탄생하도록 일조했다. 이들은 1914년에 금기시했던 산아제한 캠페인을 벌였고, 1961년 FDA의 승인을 얻어냈다. 47년의 세월이 걸렸다.
책은 콜레라 같은 무서운 전염병과 고혈압 원인을 밝힌 역학 추적의 탄생, 비아그라와 같은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신약의 효능, 정신병을 억제하는 신약 개발 등도 소개하고 있다.
나와 같은 일반인이 읽어도 전혀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약에 대한 상식을 넓혔고, 코로나 영향으로 몇 년 전 바이오 제약이 휩쓸었던 주식 시장도 생각해 보았다. 수험생 딸 덕분에 생소한 책을 읽었고(딸은 읽지 않았다), 딸은 바램대로 약학 대학에 합격했다.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제목 – 인류의 운명을 바꾼 약의 탐험가들(The Drug Hunters)
저자 – 도널드 커시, 오기 오거스
옮김 – 고호관
출판 – 세종서적, 초판1쇄(2019.11.05), 초판5쇄(2020.07.30)
쪽수 – 343
독서 – 2024.05.14~2024.06.21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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