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맨 뒷장을 덮기까지 116일이 걸렸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역사 교과서에서 비중이 거의 없는 13만년 전의 선사 시대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다. 초반은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좀 읽다 보니 저자의 놀라운 접근과 주장, 비범한 통찰을 느낄 수 있었고 책장 넘기는 손가락 속도가 빨라졌다. 인류 조상의 흔적을 추적하는 여정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책 제목에서 총은 기술, 균은 세균, 쇠는 기술 전파와 확산을 의미한다. 저자가 총,균,쇠로 정의하고 있는 문명 탄생의 기원은 고대 인류의 식량 생산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인류는 수렵 채집으로 연명해 가다가 자연에 널려 있는 동식물을 가까이 두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같은 식량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 쓴 맛이 없고 알갱이가 크고 무거우며 잘 자라는 야생 식물을 농경이 가능하도록 작물로 만들었고, 성장 속도가 빠르고 난폭하지 않으며 번식이 왕성한 초식 포유류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두었다.
작물과 가축의 종류와 확산은 지구 각 대륙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유럽과 아시아는 유리했고, 척박한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지리적 단점을 지닌 아메리카 대륙은 불리했다. 작물과 가축의 시초는 고고학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고 부르는 현재의 시리아, 이라크 지역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유럽과, 남쪽의 아프리카 북부, 동쪽의 인도와 방향으로 서서히 확산해 나갔다.
식량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자 잉여 식량을 보관하기 위한 필요성으로 관련 방법을 알아냈으며 이에 따라 인구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농경이 안정을 유지함에 따라 일부 구성원은 식량 생산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식량 생산 노동에서 벗어난 종교인, 정치가, 기술자 등 전문 분야를 구성하는 복합 사회가 등장했고, 결국 인구 밀도가 높은 국가라는 초대형 조직 사회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만든 것은 의도치 않게 큰 부작용을 가져 왔다. 소와 개의 병균이 인간에게 전파되어 천연두와 광견병을 일으켰다. 조류 독감(닭), 에이즈(원숭이), 코로나19(박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간의 감염병 1,415개 병원체 중 61%가 동물과 관련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고대 인류는 가축 접촉에 의한 질병으로 극심한 인구 감소를 이겨내고 면역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항체의 억제에 의해 유럽인의 몸 안에 갇혀 있던 병원균이 새로운 환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 때까지 불리한 자연 환경과 고립으로 동물을 가축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의 면역 체계였다(이미 유럽에서 전쟁 무기로 사용하는 말조차도 없었다). 유럽인과 함께 등장한 천연두로 신대륙 원주민의 95%가 말살했다는 연구도 있다.
식량 생산 의무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여러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 나갔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가 중심이 된 신기술 전파는 선택적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사하라 사막이 가로막고 있어 아프리카 북부에 머물렀고, 아메리카 대륙은 거대한 산맥으로 이동의 제약이 따랐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부분은 인간이 거주하기 힘들 정도의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었으며, 주변에 있는 섬 뉴기니는 농경 생산 기술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이 수렵 채집보다 열등해서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20세기 초기까지 구석기 시대와 같은 생활을 했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 중 가장 흥미롭고 재밌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특징이다. 나는 대륙 모양에 이동 축 개념을 적용한 분석을 처음 접했다. 너무 신기했다. 세계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종(縱) 방향으로 면적을 이루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은 횡(橫) 방향이다. 이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이동 경로에서는 위도 차가 적지만, 다른 두 대륙에서는 위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매우 심한 기후 변화를 극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동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고대와 중세에는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 생물체가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기 힘들었다. 유사한 기후에서는 작물과 가축이 잘 자라서 식량 생산과 농경 전환에 성공했지만, 북극과 남극 방향으로 펼쳐져 있는 대륙으로 넘어가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기술의 전파도 인류의 이동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각 대륙마다 탄생 시기와 발전 속도가 달랐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다르다. 출발은 늦었지만 급속한 기술의 발전은 지리적, 환경적 장애를 헤쳐나갈 수 있게 도와 준다. 수만 년에 걸쳐 벌어진 격차를 올바른 판단과 부단한 노력으로 줄여나갈 수 있다. 지금은 국가 정책과 사회 지도층의 리더십이 더 큰 영향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천연 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지도자에게서 부패의 모습과 뒤떨어진 국민 수준을 자주 목격하지만, 빈약한 국가에서는 먹고 살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여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위대함을 보게 된다. 모범 사례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긍지를 느낀다.
1997년 미국에서 초판으로 나온 이 책은 지금도 베스트셀러이다. 저자는 2019년 국내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총균쇠에 대해 알기 쉽게 직접 설명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탁월함과 해박한 지식, 통찰력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다. 자연 과학과 역사학 등 여러 학문을 드나들며 인류 고대사를 추적하는 하이브리드식 열정에 감명 받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과 영웅의 서사 위주로 알고 있는 나의 역사 지식에 이 책은 톡 쏘는 시원한 사이다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다가가기 어려운 학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 과학 대중화를 보여 준 저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책 마지막 내용은 일본인의 기원과 조상에 대한 추적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본 사람은 아마 이 부분을 굉장히 싫어할 것이다. 일본어 번역판에서 이 부분의 내용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내용 설명은 생략하겠다. 궁금하면 직접 책을 사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산 사람은 많아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 힌트 하나, 책을 읽으면서 구글 지도를 함께 보도록.

제목 – 총균쇠
저자 – 제레드 다이아몬드
옮김 – 강주헌
출판 – 김영사, 1판1쇄(2003.05.10), 1판21쇄(2024.9.25)
쪽수 – 784쪽
독서 – 2025.07.01~2025.10.24
추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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